20년전 첫수업의 떨림은 여전히 좋은 설레임으로 다가와
학생들과의 교류와 소통은 교직에서 느끼는 소중한 장점
조진형
전남대치전원 교수
대한치과교정학회 학술이사
오늘도 떨리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냥 떨리는 것이 아닌 약간의 설레임과 기대감, 그리고 거기에 더해 나뭇잎이 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긴장감을 더한 느낌으로 연구실을 나섭니다. 벌써 20년째 느끼고 있는 이 떨림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은 2학년 2학기에 시작되는 치과교정학 첫 수업을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무대에서 여러 행사를 해보고, 3000여명이 넘는 청중이 있는 강연장에 서보기도 했지만, 이런 즐거운 떨림을 함께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 가장 아픈 기억 중에 하나였던 IMF의 시작과 함께 대학을 마치고, 4년간의 인턴· 레지던트의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1년 국방의 의무를 시작하였습니다. 3년이 조금 넘는 생활을 마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시 모교의 대학병원 치과교정과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방향성이나, 교직자로서, 의사로서의 생각도 깊이 하지 못한 채 수련 3년차 연장선의 느낌으로 펠로우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학교로 돌아오기로 결정하는 과정에 교정과 선배들과 모교의 교수님들이 ‘개원은 누구나 해볼 수 있지만, 교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교수를 해보다 힘들거나 벅차면 다시 개원의의 길을 걸어가면 된다’라는 위로, 격려(?)의 말이나 ‘학교에서 지내보면 학생들과의 교류와 소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것이다’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학생-전공의라는 3년전의 생활·위치와는 다르게 선생-펠로우라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 선생이나 교육자, 또는 학교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치과병원 치과교정과의 구성원으로서 의국이나 은사이신 교수님들, 후배 전공의들, 그리고 환자들만으로 머리의 99%가 채워진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수업이라는 시공간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전혀 느끼지 못했을, 그 수업의 시작도 2004년 2학년 2학기 수업과 함께 시작됩니다. 펠로우로 남는 그 시기에 한 분의 교수님께서 해외연수를 떠나게 되셨고, 공백이 생긴 수업 시간을 내가 맡아서 진행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당황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누군가에게, 그것도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하고 흡수하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한다는 것은, 내 스스로가 한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못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너무 큰 부담과 짐이었습니다. 수업을 위해 교과서에 있는 내용들, 매뉴얼에 있는 내용들에 대해 모든 원저 교과서와 저널을 찾아보며 진위 여부, 전체적 의미의 이해와 해석을 해야 했고, 그러한 지난한 과정을 마치고 나면, 학생들의 이해와 기억을 돕기 위한 스토리텔링이나 도표, 그림 등을 찾고, 추가하는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당시에는 자료를 찾는 것도, 자료를 추가하는 것도 지금과는 달라서, 검색을 해서 1970년대의 저널이나,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AI에게 명령을 해서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어서, 2시간의 수업을 위해 1주일의 밤, 낮을 소비하였던 것 같습니다. 2시간 수업이 끝나고 나면, 다음 주의 2시간 수업을 준비하는데 또 그렇게 꼬박 1주일이 걸렸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생긴 습관 하나가 수업 전날 음주나 저녁 약속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그렇게 1주일 내내 공부하고, 그 자료를 정리하여 수업 전날 저녁과 밤에 수업 준비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지요.
그렇게 첫 수업을 들어가기 5분전 느꼈던 떨림...
그 기분좋은 떨림과 긴장감을 잊지 못할 뿐 아니라, 20년이 지난 지금도 느끼며 즐기고 있습니다. 정작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업 내용을 기억할 수 있는 강의를 하였는지 학생들에게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고, 수업했던 것도 기억이 가물하지만...그 첫 수업에서 수업 준비의 진정성 때문이지, 초짜의 처절한 발버둥을 느꼈는지, 수업을 마치겠다는 말과 함께 학생들은 큰 박수로 저를 격려해주었었습니다.
그 후 20여년 동안 교직자라는 길을 걸어오면서, 처음 시작할 때는 생각해보지 않았고, 고려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학생들과 교류와 소통의 소중함을 너무나 깊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중국 오경 중 하나인 예기, 학기편에 나오는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가 함께 성장한다’ 라는 문구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만남과 교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준, 교직자라 자칭하기에 부끄럽지만, 교직자로서의 20년 시간에 대해 너무나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난 오늘도 수업 준비를 하며, 그 즐거운 떨림을 느낍니다.
http://www.chihak.co.kr/news/19262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