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와 자본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상호 견제와 균형 제공해야
화려한 축제와 건배는 자제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제고해 볼 때
김 용 호
서울시중구치과의사회 고문
주인공 이름이 ‘오대수’였다는 기억은 희미해도, “누구냐, 너?”라는 명대사와 폭탄맞은 헤어스타일에 배우 최민식의 넋 나간 표정이 압권이었던 박찬욱감독의 영화‘올드보이, 2003’는 비록 일본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었지만, 센세이셔널한 줄거리와 놀라운 반전으로 대중들의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는데, 줄거리가 엄청난 파국으로 마무리될거라는 복선이, 자기 이름이 오대수인 것에 대해, 여러 사람 앞에서 스스럼없이‘오늘만 대충 수습한다’ 무책임한 이름풀이를 하는 초반의 장면에 절묘하게 깔려있었다. 그 이름에 절대로 용납되거나 구원받을 수없는 주인공의 정체성을 못 박고 시작하겠다고 작정하듯이.
그런가하면 도입부 주인공의 이름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이름을 가진 후손들이 등장하고 5代에 걸쳐 파란만장한 삶들을 펼치는 내용으로,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조국 콜롬비아에 안겨준‘백년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1967)’이 있다. 이 작품 속‘부엔디아’가문의 후손들에게 이어져 일어나는 복잡한 사건들과 소위‘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 로 일컬어지는 환상적이다 못해 황당한 묘사들은 우리의 ‘올드보이’를 가볍게 압도한다. 예컨대 주인공 부엔디아가 세운 가상의 유토피아적 고을인‘마콘도’로 집시들이 가져온 ‘끓고 있는 얼음’이나, 예전에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현실에 함께한다는 설정, 부모의 훈육에 따르지 않는 아이가 뱀이 되는 장면, 식물의 씨앗처럼 작아져버리는 사람에 대한 묘사 등은 원작자인 마르케스는 물론 많은 동시대 남미 문학작가들이 경험한 혼란스러운 가치관의 긴 식민지역사에 기인한다고 평단은 해석한다. 이 작품은 도입부부터 주인공 부엔디아와 그 아내 우르술라가 ‘사촌간의 근친은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난다’는 공동체의 규율을 깨고 거기서 벗어나 새로운 유토피아적 도시‘마콘도’를 세운다는, 사실과 허구, 현실과 환상들이 동시에 뒤섞여있는 프레임 속에서 시작된다. 모종의 사연으로 공동체를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지만 내재된 고독을 대물림(작가는 새로운 인물들의 이름에 그 이전 세대 인물들의 이름을 반복함으로써 끊지 못하는 업보를 표현하려함)하며 마침내 이모와 조카사이에서 결국은 돼지꼬리가 달린 자손이 태어나고 고통과 절망 속에‘마콘도’는 몰락하고 소멸한다는 주제를 여러가지 복선과 역사적 사건들의 비유들 속에 전달했었다.
교육과 정치적 이념이 필요에 의해 서로 과도히 매혹되어 가까워지다가, 혹여 모종의 의도를 가진 매파의 중개로 결혼에 이른다면, 근친혼에 내재하는 것과 같은 위험요소의 씨앗들이 서서히 싹틀 수 밖에 없고, 결국 ‘백년의 고독’에서 마르케스가 묘사한 쌍둥이처럼 양측 모두 정체성을 잃고 자신들조차 서로를 분간할 수 없게 됨은 필연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상당히 개연성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둘을 가슴에 심장처럼 품고 가야하는 공동체의 나머지 부문들은 재앙같은 혼란에 처하게 되는데, 우리 시대는 이미 이를 혹독히 경험하고 있고 대책수립의 갈피조차 못 잡은 채 잿더미가 된 초가삼간만 망연자실 바라보며 누가 맨 처음 이 곳으로 가자고한 ‘부엔디아’였는지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는 의료와 자본, 의료와 정치 간에서도 성립하는 명제로, 서로 간에 어느 정도 적절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정체성과 명분과 기능을 유지하며 서로에게 견제와 균형을 제공하는 지지적 관계여야 건강한 생태계임을 무시하고, 안타깝게도 지켜야 할 경계를 서로 넘었다.
더하여 생각해 본다. 우리가 치과계가 나름 노력과 시도를 통해 애써온 많은 것들 중에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모방이나 결합들이 씨앗이 되어, 비록 누구의 뜻도 그렇지 않았지만 마치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은 것과 같은 시대를 맞이한 것은 아닌지. ‘끓고 있는 얼음’처럼 이상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널린 이 시대는 나도 모르게 올드보이的 복수의 숲과 부엔디아的 자폐순환의 늪에 빠져있기 십상이다. 치과계도 여러 기원들을 들어 백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기이다.
화려한 축제와 건배는 자제하고 지나온 세월과 그 결과인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겸허히 제고하고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을 살필 때다.
http://www.chihak.co.kr/news/19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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