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가 심했던 월남 과정 탄로날까 부모님은 내게도 비밀로 해
김 영 수
서울대명예교수
신의주 시절
나는 평안북도 신의주시 근화동 6의 26 번지에서 태어났다. 문밖에 나오면 큰 길이었고 오른 쪽으로는 골목을 사이에두고 약죽소학교 후문이 있고 더 가면 학교정문이 나온다. 왼쪽으로는 백병원이 있었고 우리집과는 벽돌담 하나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집 정원에서 뻗어나온 과실나 뭇가지가 우리집으로 가까이 접근해 있어 따먹고 싶었으나 애꿎게 손이 미치지 못해 아쉬워 했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눈이 아파 치료 받으러 갔던 생각도 난다. 병원 왼쪽 모서리에는 동회가 있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내가 살았던 그때 그시절의 분위기를 묘사하고 싶어서 이다.
어느날 그동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동네 다른 아이들과 열려진 문속이 궁금해서 힐끗힐끗 들여다 보았다.
긴 테이블앞에는 다섯명정도 선거관리위원들이 앉아 있었고 그위에는 찬성과 반대를 나타내는 검은색과 흰색의 두 투표함이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무기명기표한후 관리위원들이 보는 앞에서 선택해서 함에 넣는다. 그날은 특별한 사람을 선출하는 날이었다.
투표용지를 검은색함에 넣는 사람들도 가끔은 있었으나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조사를 받고 불이익을 당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귀동냥으로 들은 기억이 있으나 진위는 모른다.
우리집 이층에서 내려다보면 가끔 다발총을 맨 소련군들이 한 소대 정도씩 행진해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집밖에서 총소리가 나고 소란해지고 먼지가나고 주로 학생 들이 떼로 몰려 도망가는 것이 보여 무서워 어머니가 문잠그고 들어오라고 소리쳐 방안에 숨어 있던 생각이 난다. 그것이 신의주 학생사건이 아니었나 추측된다.
일제시대에 신의주에 있던 약죽 소학교는 그곳에 살던 유명 인사는 다거쳐서 동 중학교로 진학했다.
동중은 겨울엔 운동장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놓아 나는 썰매를 타고 놀았었다. 일제 시대에 는 나는 겨우 일학년으로 일본어 알파벳을 한학기 배운 것이 전부이고 학기중 일본군이 싱가폴을 함락시킨 기념으로 작은 고무공을 학생들에게 두개씩 나누어 줘 받은 생각도 난다.
그해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일제 강점기는 끝났다. 전쟁이 무엇인지 해방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이에 약죽소학교는 인민학교로 바뀌었고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 이후로는 공부한 내용이 전혀없고 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지면서 어린 학생들은 자동적으로 모두 김일성 소년단원 이되고 연일 궐기대회, 시가행진, 북한 및 소련국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들을 배우고 교실 수 업은 없고 신의주 제지공장 및 압록강변 견학한것등이 학업의 전부였다. 즉시 신의주를 떠 났음으로 더 이상의 학업의 연속성은 없었다.
우리집 어른들은 분위기가 악화되가는 것을 탐지하고 그로부터 약 1년간은 나는 전혀 눈치도 못채는 사이에 모든 농토와 가옥 재산을 신속히 처리하고 북한을 떠나기로 정하고 짐을 꾸려 어느날 이침 신의주역에서 기차를 탔다. 그런데 출발시간 20분전쯤 갑자기 보안서원들이 몇 명 기내에 들이닥처 우리가족을 모두 끌어 내렸다. 나는 이사가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 른들은 조사할것이 있다고 어디론가 데려가고 나는 살던 집으로 가 있으라고 했다.
다행히 새로 이사온 아주머니는 사전에 통보를 받아서인지 나를 하룻밤을 살펴 주었다. 아직 식구들은 다 이사오지 않아서 집은 조용했다. 이제는 내집이 아닌 집에서 마당한구석 창고에 내버려져 있는 내 자전거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던 추억이 아직도 서린다.
북한은 통제가 아주 심했다. 언젠가 어머니와 외가집에 가는데 보안서에 가서 여행증명서를 받고 갔었는데 현지에 가 있을때 정말 와있는지 현지 보안서에서 확인하러 나왔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남한에 가까운 데로 이사를 간다는데 가만 있을리 없었을 것이다.
하룻밤을 지새고 다행히도 그다음날 아침 가족 모두 풀려나와 다시 황해도 해주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내가 잘못해서 행여 계획이 탄로 날까봐 나에게는 전혀 알려 주지않아 사실 나는 무슨일이 일어 나고 있는 지도 몰랐다. 당시 모든 계획은 철저히 전문 안내원들에 의하여 처음부터 기획된 것 이었다. 당시 월남이 의심되는 경우엔 감시가 심했다. 보안서에는 우리가 친지와 해주에서 장사하기 위하여 이사를 간다는 것으로 되 있었다. 해주로 가는 기차는 어느 덧 대동강을 건너 가고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한달정도는 이파트 같은데에서 가족들과 지냈다. 심심해서 혼자 해주 바닷가 에 나가 붉은 작은 게를 잡던 일이 기억난다. 내가 먹던 검은 게와는 달리 집에 돌아와 물어 보니 못 먹는 게니까 잡지 말라고 해서 할 일이 하나도 없어 정말 심심한 며칠을 보냈다. 같이 놀 동무가 필요해 학교를 보내달라고 했으나 어머니는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것 은 이어지는 일련의 계획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으나 당시 나는 그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http://www.chihak.co.kr/news/1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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