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뽑는 사람’은 인간의 고통과 그에대한 시선이 담긴 작품
환자의 공포를 마주하는 일상인 치과의사로 여러 감정 들어
백 연 화
관악서울대학교치과병원 치과보철과
대한인공치아골유착학회 재무이사
대한노년치의학회 법제이사
대한치과보철학회 연구부·섭외부 위원
얼마 전 주말,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시회를 찾았다가 우연히 카라바조의 ‘이 뽑는 사람(The Tooth Puller)’(1608-1610)을 마주했다. 처음 작품 앞에 섰을 때, 나는 마치 시간의 틈새로 빨려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 환자의 고통과 마주하는 치과의사로서, 익숙한 광경이지만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일그러진 얼굴의 환자, 집요한 손길로 치아를 뽑아내는 의사,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구경꾼들의 복합적인 감정—카라바조는 단순한 치료 행위를 넘어서, 인간의 고통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리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었다.
카라바조(1571-1610)는 명암법(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을 극적으로 활용한 화가로, 그의 작품에는 마치 연극 무대처럼 빛과 어둠이 교차하며 감정을 증폭시킨다. 우리는 그가 남긴 종교화와 역사화를 통해 위대한 순간들이 어떻게 웅장한 서사로 재탄생하는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왜 하필 ‘이 뽑는 순간’을 이토록 거대한 규모(139.5×194.5 cm)로 그려냈을까?
카라바조는 이미 수많은 역사적·종교적 장면을 다루었지만, 문득 ‘이를 뽑는 순간이야말로 현실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가장 격렬한 고통의 순간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의 다른 작품들은 대부분 성경 속 이야기나 신화적 장면들이지만, 이 그림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실제의 순간’을 극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의 충격적인 리얼리즘은 단순한 발치를 넘어, 인간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시선들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그림 속 환자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 아마도 처음에는 양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겠지만, 참기 어려운 고통에 왼손을 들어올려 저항하듯 호소하고 있다. 이는 나의 진료실에서 매일 목격하는 광경과 다르지 않다. 환자가 손을 불안하게 움켜쥐다가 방포 위로 들면, 어시스트가 재빠르게 손을 내리며 말한다. “손 올리시면 안 돼요. 다칠 수 있어요!” 카라바조의 그림은 단순한 과거의 의료 행위를 넘어,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 ‘치료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림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구경꾼들이다. 어떤 이는 놀라움과 호기심에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어떤 이는 두려움에 초초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또 어떤 이는 구경거리라도 난 듯 흥미로운 듯 바라보고 있고, 그림의 오른쪽의 노파는 입을 앙다문 채 단호한 표정으로 응시한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도 치과 대기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환자가 비명을 지르면, 대기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은 저마다 반응한다. 누군가는 안절부절못하며 한숨을 내쉬고, 누군가는 머릿속으로 자기 차례를 떠올리며 괜히 긴장한다. 어떤 보호자는 “안 아프겠죠?”라며 의사의 눈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수 세기가 흘렀지만, ‘고통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치과의사로서 우리는 환자의 구강 건강을 회복시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존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17세기 카라바조가 묘사한 ‘이 뽑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정밀해졌고, 마취법도 발전했지만, 환자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치과가 병원 중에서 제일 무서워요.”, “소리만 들어도 덜컥 겁이 나요.”, “안 아프게 해주세요.” 이 말들은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일상적으로 많이 듣는 말들이다. 매일 환자의 공포를 마주하며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이 직업이, 과연 얼마나 스트레스가 큰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그림 속 치과의사의 안간힘을 쓰는 저 표정은 어제 임플란트를 빼려 낑낑대던 마스크에 가려진 바로 내 모습이다. 심지어 그 수많은 극적인 순간들을 자극적으로 그려낸 카라바조조차 ‘이 뽑는 순간’을 일상에서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인정(?)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림 앞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환자의 고통에 공감이 되시나요, 아니면 구경꾼들의 호기심이 더 와 닿으시나요?”
전시회 오디오 가이드에서 들려오는 이 질문에,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마에 핏줄이 서도록 힘을 주고 있는 치과의사는 보이지 않나?”
카라바조는 단순한 일상의 한 장면을 웅장한 역사화처럼 그려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치과의사로서, 환자로서, 혹은 구경꾼으로서 각자의 위치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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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거장이라 불리는 카라바조의 ‘이 뽑는 사람(The Tooth Puller)’(1608-1610) 작품 |
http://www.chihak.co.kr/news/19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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